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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연재 칼럼]

누가 지방소멸을 말하나

by 지역쓰담 2019. 8. 22.

권영란
진주 <단디뉴스> 전 대표     / 등록 :2019-04-15 16:51

“인자 다 죽고 나모는 우리 마을에는 누가 살꼬? 난중에 자슥놈들이 오기나 올 낀지….”여든셋 묵실띠기 아지매가 밭고랑에 앉아 내뱉는 이 말에 누가 뭐라 답할 수 있을까.

경남 산청군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에도 1970년대 이촌향도 바람이 불었고, 점차 주민이 줄었고, 농산어촌 작은 학교 통폐합에 의해 이미 오래전에 이 일대 하나뿐이던 초등학교가 문을 닫았다. 그때 서너명 마을 아이들은 노란 학교 버스를 타고 면 소재지 학교로 다녔고 그마저도 몇년이 지나서는 볼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마을에서는 어린이를 보기 힘들게 됐다. 한때 100가구가 훨씬 넘고 주민 수가 500명이 넘었다지만 지금은 40가구 정도에 50여명의 노인들만 살고 있다. 20년 뒤, 아니 10년 뒤 이 마을은 어떻게 될까.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한국의 지방소멸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 228곳 가운데 소멸위험지역은 89곳이다. 경상남도만 하더라도 18개 시·군 가운데 합천군, 남해군, 산청군, 의령군, 하동군, 고성군을 비롯한 11곳이 소멸위험에 해당한다. 지역 인구 분포를 살펴보면 서울 19%, 인천 6%, 경기 25%로 전체 인구의 5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거기에다 부산 울산 대구 대전 광주 지역에 20%, 결국 나머지 30% 인구가 전 지역에 고만고만하게 걸쳐 있는 셈이다.

중앙정부와 언론, 학계는 마치 서로 입을 맞춘 듯이 ‘지방소멸은 서울과 수도권의 부담 가중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국가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인구가 줄어들면 그 지방자치단체는 세금수입이 줄어들어 일정 기간 정부가 지원하는데 이는 다른 지역에서 낸 세금으로 그 지역을 먹여 살리는 셈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인구가 적은 군단위 지역의 경우 1인당 공적자금 투입예산이 훨씬 많은 편이다. 10년 뒤에는 대도시가 1인당 250만원이라면, 군 지역은 1170만원을 투입해야 하는데 결국은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 국가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문제가 지방소멸일까? 그게 아니라 인구 불균형, 자원 불균형을 초래하는 서울·수도권 초집중화 현상에 있는 것이지 않을까. 지난 12일 전국 기초지자체장들은 소멸위기는 지역 간 불균형에 따른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시·군·구 재정 확충, 자치경찰제 실시, 교육자치 강화, ‘지방이양일괄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 등을 촉구했다. 이보다 앞서, 전국 73개 군이 참여하는 농어촌 지역 군수협의회는 3월26일 국회를 찾아 ‘고향세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다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현실은 몇가지 법안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중앙집권형 국가체제가 초래한 이 위기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 문제가 무엇인지 좀 더 진지한 접근과 분석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지방소멸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죄다 특정 세력의 말장난, 돈장난, 수치놀음으로 전락할 것 같다.

차라리 며칠 전 동네 선술집에서 청년들이 나누던 이야기가 훨씬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들린다. “나 같으면 도시재생뉴딜사업에 투입되는 예산 50조원으로 차라리 소멸위험지역 땅을 모조리 다 사버리겠다. 그래서 농어촌에서 농사짓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전부 모여라 해서 무상으로 나눠주겠다.” “농어촌 지역의 가치를 지키고 싶으면 오히려 농산어촌 학교 되살리기를 하는 거지.” “농사꾼을 나라에서 채용하는 건 어떨까? 농사짓는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는 거지.” 정치적 계산 없이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현실이었다. 그러고 보면 지방소멸 해법도 딱히 복잡하지 않을 듯하다. 청년들의 이야기처럼 전인구의 50%가 집중된 서울·수도권 사람들이 각 지역으로 살러 가면 된다. 그래서 특정 지역에 집중되지 않고 골고루 분포해 살아가면 된다.

그런데도 지금 과연 누가 ‘지방소멸’을 말하는가. 국가 위기를 말하고 있는가. 내 보기엔 중앙정부이고 언론이고 서울·수도권 사람들이다. 죄다 난민처럼 살고 있는 그들이다. 우리, 어느 지역이랄 것 없이 다 같이 골고루 살아가자. 살아내자.

연재지역에서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90077.html#csidx4b64c487389236aae3fbc2d64770ced